페루에서 함께 지낸 사람들과 부산 사상에서 만나기로 했다.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다가 이곳이 생각났다. 내게는 조금 슬픈기억과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월호 뉴스를 이곳에서 밥을 먹으면서 봤기 때문이다.
전원 구출이라는 뉴스에 안심하고 일을 하고 있다가
그것이 거짓뉴스라는 것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분노를 금치 못했었다.
그래도 이날은 페루에 있던 사람들에게 사상에서 먹을만한 밥집, 쭈꾸미집을 알려준다는 기쁨이 있었다.
사상의 상권은 매섭다. 조금만 잘못하면 얼마못가 문을 닫기 일쑤인 곳이다.
그런데 그런 사상에서 벌써 10여년 이상을 쭈꾸미 하나로 살아남은 집이 있다.
가게는 그렇게 크지 않다. 입구도 다른 가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허름하고 어두워 보인다.
하지만 이런 오래된 가게야 말로 자신만의 무기가 있는 곳이다.
저 정돈된 그릇이 보이는가? 아마 점심에 저만큼을 쓰고 설거지를 해서 다시 넣어둔 그릇들일 것이다.
주방과 홀은 이게 전부다. 우리 테이블 앞 뒤로 한 줄이 더 있을 뿐이다.
바닥에 앉는 테이블 9개가 끝. 신을 벗고 들어와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쭈꾸미가 나온 것을 보면 별거 없어 보인다.
다른 쭈꾸미집과 별다른 것이 없다. 불판에 미리 양념해 둔 쭈꾸미를 사람 수, 주문 수에 맞게 얹어서 나온 것이다.
먼저 물을 서빙하면서 주문을 받고, 주문에 맞춰 쭈꾸미가 바로 나오고 그 다음 테이블 세팅이 시작된다.
물 흐르듯이 진행된다. 홀 서빙하는 분들이 숙련됐다는 뜻이다.
실제로 4년 전, 2015년에 본 그 아주머니였다. (아. 한 사람은 바뀌었나?)
세팅된 반찬들.
사실 반찬 가짓수가 많은 것이 필요없다.
잘 조리된 쭈꾸미와 쌈 싸먹을 깻잎과 입안의 열을 낮춰줄 콩나물 국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계란찜도 한 입 먹으면 매운 맛이 한결 나아진다.
이 쭈꾸미는 매운 맛이 매력이니까!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에게는 감히 추천하지 못하겠다.
혹시 오삼불고기를 깻잎에 싸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반드시 먹어보라고 할 만큼 맛을 추천한다!
추운 겨울,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은 한 번씩 생각이 난다.
당면과 콩나물이 매운 소스에 들어가서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깻잎과 김으로 쌈을 싸서 먹으면 맵고, 달고, 담백하고 짭짤한 맛이 섞여서 난다.
왜, 뭐가 담백이냐고? 콩나물!
밥도 볶았으면 쌈을 싸먹는다.
쌈은 달라하면 계속 주신다. 홀 서빙하는 이모들은 이미 알고 있다. 어떻게 먹는 게 맛있는지...
쌈으로 먹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된다. 밥도 3개 볶았는데....
잘 되는 집은 음식에 이야기가 있다.
음식 자체에 이야기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음식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식사를 다 마치고 음식점을 나설 때까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손님도 일하는 사람도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도구들이 곳곳에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없다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분위기가 어색하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장사를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은 어느정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음식들이 가게 운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단가가 맞는지, 음식을 서빙하는데 어떤 순서가 있고,
손님들이 먹는 동안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를 잘 설계하는 것 등은 소홀히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가격과 맛과 서비스, 손님이 채우는 이야기가 있는 집이어야 내 나름의 추천 별을 4개 이상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괘법 쭈꾸미]
추천: ★★★★☆
부산 사상구 광장로81번길 33
영업시간: 월~금요일 11:30~00:30 / 토~일요일 11:30~23:00
주차공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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