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 영월교육원 26일차(2016.09.24)
오전에는 스페인어 수업이 있었다.
생각보다 진도를 천천히 나가서 기본을 잘 다질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같은 내용을 다른 학습지를 주어가면서 천천히 소화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을 보니
플로리 선생님이 한두 해 가르쳐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오전 스페인어를 마치고
오후에는 영월요양원으로 지역봉사활동을 갔다.
감기기운이 오르락내리락 하던 차라 조금 조심스러웠는데
오늘은 다행히도 감기가 거의 다 떨어질 듯 증상이 약해서 다행이었다.
거기다 점심을 먹고나서 함선생님이 카페에가자고 하셔서 생강차를 한 잔 마셨더니 몸이 따뜻하다.
오늘은 요양원 어르신들 앞에서 준비한 노래와 춤, 악기, 구현동화로 공연을 하고
어르신들을 모시고 교육원을 한바퀴 돌아봤다.
휠체어를 끌고 중앙공원을 돌아서 숙소동 안쪽길까지 천천히 돌아보고 풋살장까지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볕은 정말 좋은데 그림자는 적어서 혹시 약한 피부가 상할까봐 내 그림자로 할머니를 자주 가려드리려고 노력했다.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한 할머니가 생각이 나서 더 신경이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걷다보니 시간이 벌써 50분이 흘렀다.
요양원으로 돌아오니 요양원 앞에서 휠체어를 세워두고 노래들을 부르고 있었다.
노래를 듣다가 안으로 들어가서 식사수발을 도와드렸다.
수발을 돕다보니 벌써 5시 반이 넘어간다.
저녁에 있을 전체모임에서 마니또한테 줄 선물은 준비했는데 편지를 아직 못써서 시간이 촉박하다.
밥을 먹고 편지를 쓸려고 했는데 일이 또 생겨버렸다.
아름선생님이 요양원에서 찍은 공연 파일을 달라고 해서 그걸 꺼내는데 시간을 써버렸다.;;;
밥을 먹고나니 시간이 없다.
챙겨서 나오려니 은석쌤한테 전화가 온다. 당황해서 거절버튼을 눌러버렸다.
빨리 오라는 거겠지? 다시 전화를 걸어서 바로 간다고 이야기하고 끊었다.
올라가니 막 시작한 것 같다.
마니또를 찾고 공연이 끝나고, 퀴즈게임을 하고, 유연성을 길러주려고 하는 다리찢기 게임과 피자를 먹기 위한 게임(?)을 하고, 경품까지 뽑았다.
그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니또는 처음부터 찾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끼를 잃으면 모두가 도둑으로 보인다고 모두 마니또라고 생각하면 모두를 사랑하며 지낼 수 있는 시간들이니까....
그럼에도 나를 챙겨주는 마니또는 내게 최선을 다해주었다.
설레는 마음이 들 정도로 날 챙겨주고 지켜봐줘서 정말 고맙다.
차 한 잔 이상이라도 기꺼이 대접하고 싶다.
하지만 정작 내가 챙길 마니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게로 많이 챙겨주질 못했다.
편지도 한 번 써주질 못해서 미안하기만 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대접해야겠다.
오는 길에 삶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나 잘 맞아들어가는 톱니라니....
코이카 영월교육원 27일차(2016.09.25)
일요일이다.
아침운동이 없어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라는 거지.
그런데 오늘은 왜 6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떠졌을까.
문을 열고 밖을 나가보는 여유까지 부렸을 정도로 정신이 말짱했다.
잠시 바깥공기를 쐬다가 안으로 들어와서
다음주 외박 때 서울 숙소를 검색했다.
10.01-10.03일을 서울에서 지내려니 게스트하우스나 Air B&B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검색 중이다.
종로나 홍대 앞 게스트하우스를 둘러봤는데 고만고만하다.
어차피 결정은 다음주 수요일쯤 할테니 일단은 구경만 했다.
나가서는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둘러보고 친구들을 만나볼 생각이다.
양재로 복귀하면 다음날부터 바로 직무교육!
오전에는 자료실에 가서 책을 빌리고
점심을 먹고는 기타 소모임을 했다.
오늘이 마지막 시간이라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
아쉽지만 이제부터는 혼자 연습해야겠지? 현지에 가면 꼭 기타를 사서 연습해봐야겠다.
숙소에 와서 책을 읽다가 누웠다가 하면서 쉬다가
풋살장으로 갔다.
오늘 페루 대 에콰도르 축구경기를 하기로 했다.
전후반 각 15분씩 6사람이 선수가 뛰기로 했는데 부상자가 나왔다.
최ㅇㅇ 선생은 빨리 달리다 멈추는 중에 오른쪽 허벅지 근육에 무리가 갔는지 누웠고
김ㅇㅇ 선생은 공을 머리로 너무 많이 받았는지 약한 뇌진탕 증세가 보였다.
병원을 갔다가 저녁에 왔는데 다행히 별일 없이 안정을 취하면 될듯이 보였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 하는 수련을 잠시 하고 자야지.
하루의 흐름을 써 놓은 이 글들 사이사이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들이 있다.
많은 좋은 만남들이라 자세히 기록하기보다는 기억 속에 두려한다.
수고했어. 오늘도.
코이카 영월교육원 28일차(2016.09.26)
오전부터 활동수업
점심을 11시부터 먹고 다시 활동수업
WFK탐방을 미션수행하고 치차모라다 한 잔
저녁을 먹고는 옷을 갈아입고 태권도
태권도가 끝나고 어릴 때 동네 놀이
그러다 또 허리 쪽에서 찌릿하는 느낌
그자리에서 천천히 풀어주고 걸어내려왔다.
어린 마음으로 돌아가서 너무 신나게 놀았나보다.
하느님은 내가 너무 넋놓고 놀지 말라고 이렇게나 찌르시나보다.
몸의 가시가 중요한 것을 잊지 않도록 돕는다.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에 잘 신경쓰지 않는다.
상처를 주었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며, 그 모든 상처는 스스로의 마음으로 갚아나가야 한다.
특히 집단에서의 몰아감은 정도를 더하는 것이므로 성숙한 사람은 순간순간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코이카 영월교육원 29일차(2016.09.27)
생각지도 못한 1달러의 날이다.
한 번 했으니 이제 안할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 순진했다.
배고픈 하루다.
배도 고픈데 생각해야하는 교육은 왜이리도 많은지....
어제부터 해외봉사활동연구 시간을 계속 가진다.
아침을 먹고 활동 수업으로 봉사활동 갈등사례를 공부 하고
조별로 나름 상황을 설정해서 한 편씩의 연극을 했다.
유숙소에서 시니어와 주니어 사이의 식사나 시간활용에 대한 갈등,
코이카 합격 후 가족들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에서의 가족과의 갈등,
현지에서 활동 중 지역 무단이탈로 기관과 단원과의 갈등,
현지 생활 중 단원들 사이에서 말을 옮기는 것에서 발생하는 갈등,
현지에서 현지어 수업 중 현지어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등이 올라왔다.
조금 더 생각해본 사례는 식사나 술자리에서의 갈등,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갈등, 기관장과 단원의 갈등 등이 있었다.
물론 그것들 외에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오후에는 현장지원사업에 대해서 현장의 문제상황을 간략하게 전달받고
현장지원사업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실습지를 작성해봤다.
발표도 했는데 한국어교육 발표는 발표지 안의 내용과 실제 사업에서 신경써야 할 내용이
적절히 배합되어 다들 좋아했다.
한국어교육 4개조 중에 한 조를 뽑기 위해서 같이 발표하고 거수로 투표를 했다.
이집트에 한국어교육으로 가는 선생님이 발표를 하시기로 했는데 이미 다른 곳에서 코이카활동을 하셨던 분이라 그런지 현장사업에 실제로 필요한 부분들을 꼼꼼하게 잘 설명해 주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현장사업 내용을 미리 계약서로 작성해서 공증까지 받아놓겠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공증까지 받는 사업이라면 몇 억단위 이상의 사업이거나 국가에서 하는 행정사업들인데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에서 현지분위기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
몸무게를 재 봤더니 1킬로그램이 또 늘었다.
뭘까? 내가 뭘 놓치고 있을까?
너무 많이 먹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인가....?
그런데 전보다 몸은 가볍다.
대신 감기가 안떨어지고 있다.
계속 따끈한 쌍화탕과 생강차, 물을 마셔주고, 약도 먹는데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목이 부은 건 많이 가라앉았는데 기침이 계속 나온다.
감기가 몸상태를 조절하는 단계라고 한다면 이제 점검의 막바지일텐데....
아직 조정할 것이 그렇게나 남아있는가..
오늘 점심쯤 아프리카 숙소에서 한 분이 퇴소를 했다.
무슨 일일까?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기를...
코이카 영월교육원 30일차(2016.09.28)
아침운동 시간에 당직선생님이 C조가 점점 많아지고 게을러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교육생들이 보기에는 좀 마음에 걸리는 태도였는가보다.
군데군데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라고 하는 말이 나왔다.
요즘 우리 단원들이 점점 쳐지는 모양이 현지생활에서도 활력을 잃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우려하는 말을 한 것이, 그렇게 '자신은 우리가 게을러지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는 표현이 되면
결국 메시지의 전달과정에서 오류가 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재난 안전 실습을 하러 40분 정도를 차를 타고 영월소방서로 갔다.
끈묶기, 완강기 사용해보기, 화재진압실습으로 소화전 사용과 소화기 사용, 화재상황실습, 응급처치 CPR을 조별로 차례차례 실습해봤다.
소방관들은 정말 친절하고 프로페셔널했다. 우리에게 교육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고 자신들의 업무에 궁금한 점은 없는지 질문해도 괜찮다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긴급구조방송이나 출동을 요청하는 방송이 나오면 내용을 듣고 재빨리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영월소방서에서 응급구조 CPR을 게임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어찌하다보니 나랑 김ㅇㅇ 선생님, 김ㅇㅇ 선생이 있는 조가 1등조 상을 받았다.
다른조랑 별 다른 건 없었는데....안 졸고 깨어있으면서 자주 눈을 맞춰서 그런가보다 생각하려고 한다.
저녁은 주천면에서 먹었다.
주천면 곱창전골집을 가려고 전화를 했는데 다른 곳으로 가게를 옮겼다고 한다.
주천면 감자탕으로 급히 주문을 바꿔서 먹고 나왔는데 다른사람들이 곱창전골을 먹고 왔다는 것이 아닌가.
나랑 주병 선생이 하나로마트에 갔다가 둘만 들은 이야기라서 이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는데...
카페에 와보니 다른사람들은 이미 카페 안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왜 난 페루에서 아빠로 불리는걸까?
가족놀이가 최신유행이 되었는가보다.
한달정도 지나니 사람들이 많이 친해지기 시작했다.
친한 사람들은 말을 거의 다 놓고, 장난도 곧잘친다. 친함은 마음의 거리가 가까웠다는 것이니 참 좋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이제 분명히 어느시기가 되면 정도를 넘어서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나는 분명 정색하며 말해야 하게 될텐데...그런일이 안생기길 바랄 뿐이다.
내가 상처 주었다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코이카 영월교육원 31일차(2016.09.29)
아침운동이 끝나고 오늘 점심시간이 1시간밖에 없다는 공지가 있었다.
어젯밤 나온 MBC뉴스 코이카 사건사고 이야기를 하면서 다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오전수업이 시작하기 전 어제 주천에서 먹은 저녁밥에 대한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잘 넘어갔다.
변ㅇㅇ선생님이 봉사활동 시기별 액션플랜 수업을 시작했다.
우리 피로도를 생각했는지 굉장히 부드럽게 진행하려고, 말을 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선생님들도 장점들이 다 있지만 내가 접한 변ㅇㅇ선생님의 장점은 상대를 배려하는 말과 행동이 아닐까한다.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그 태도를 느끼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일게다.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활동 아이디어를 내고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시기별로 활동목표와 과정과 결과를 내봤다.
이전 선배들의 자료를 보여주어서 어떤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지 알기 쉽게 해주었다.
점심을 먹고는 김ㅇㅇ 선생님한테 차를 한 잔 얻어마시면서 기타소모임 마지막 시간에 못 준 붓글씨 부채를 드렸다.
오후시간은 청렴문화제를 했는데 우리가 첫번째다. 1회 청렴문화제라는 말이다.
어제부터 발효된 김영란법과 관련해서 이런 행사를 더 신경써서 진행하는지도 모르겠다.
한조에 7-8명씩 포스터 일곱 조, 영상 두 조, 공연 세 조를 짜서 50분만에 결과물을 냈다.
거기에다 2-3분씩 발표회를 하고 심사위원단 투표를 거쳐서 1위도 뽑는 평가도 있었다.
간단한 문화제라고 하더니 정말 문화제다.
하다보니 중간 쉬는 시간을 다 써버렸다. 이미 4시다.
4:15분부터 현지어(스페인어) 시간이다.
쉬는 시간에 스페인어 단어를 외우려고 했는데 못외웠다.
교재도 숙소에서 안가져와서 정말 바쁘게 갔다왔다.
플ㅇ르 선생님이 파파 레예나를 들고 오셨다.
정말 맛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씩 먹는 걸 나는 2개나 먹었다.
단어시험을 치고, 다시 새로운 단어를 보면서 정관사를 익히고, 부정관사를 배우고, Hay동사(=Be동사)를 배우고, 다음시간 배울 Ser동사를 들었다.
2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나만 그런 건 아닌 듯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말들을 한다.
수업기술의 승리랄까? 이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가?
단복이랑 구두를 서울교육원으로 보내준다고 308호로 가지고 오라고 공지가 있었다.
단복이랑 구두에 파견국과 이름을 쓰고 한쪽에 놔두었다.
단복가방에는 여기서 준 코이카 배낭도 넣었다. 다른사람들은 안에 넣었는지 모르겠는데....일단 나는 넣었다.
도저히 등가방 두 개를 짊어지고 갈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단복이랑 구두에 이름표를 붙일 때 테이프로 붙였는데 가위나 칼이 없어서 이빨로 뜯고 있었다.
나도 이빨로 뜯었는데 다 하고 생각하니 가위가 있어야 다른사람들이 나같은 수고를 안할 것 같았다.
가위를 찾아오니 전ㅇㅇ선생님이 이로 테이프를 끊을려고 하고 있었다.
얼른 말리고는 가위를 드렸다.
지금 다시 생각하니 현지에서도 방금의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고생했어도 내 다음사람은 몸이 상하지 않게 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이보다 더 앞선 생각이 든다면 또 그 마음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코이카 영월교육원 32일차(2016.09.30)
외장하드 파일공유
영월박물관포럼
저녁은 주천에서
단체사진
코이카 영월교육원 33일차(2016.10.01)-서울 외박
영월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조금 일찍 일어나서 잠시 눈만 굴리고 있었다.
그냥 있기 그래서 화장실도 갔다가 물도 한 잔 마시고, 그래도 기상시간이 멀어서
오늘 칠 시험내용을 볼려고 했다. 역시 눈에 안들어온다. 그래서 모양만 익숙하도록 보기만 했다.
아침운동을 마치고 씻은 후 짐꾸리기 마무리를 했다.
아침은 평소보다 조금 적게 먹고 빨리 대강의실로 갔다.
대강의실에서 아까 새벽에 눈에 익힌 단어들을 조금 더 익히고 시험준비를 했다.
플로르 선생님이 들어오고...시험을 쳤다.
다행히 익숙한 형태의 문제들이 나와서 이미 알고 있던 단어들을 총동원해서 유추, 추론한 답을 적었다. 빈칸없이 채우고 나니 뭔가 뿌듯했다.
잠시 30분간 쉬는 시간에 페루 단체사진을 찍기로 하고 나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찍어줄 사람을 미리 정하진 않았다. 그래도 기꺼히 우리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어서 무사히 사진을 찍었다.
답이 매겨진 시험지를 받는 시간은 짧고도 길다.
시험지가 내 손에 오기까지의 시간은 짧지만 내게 남기는 충격은 참으로 길다.
이번 시험은 97점을 받았다.
우리가 스페인어 공부에 용기를 잃지 않도록 플로르 선생님이 문제들을 쉽게 낸 탓일 것이다.
기분은 좋다.
점심을 먹고 중동 숙소 앞에서 방 모임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어줄 사람을 섭외해서 선생님들을 부르니 바로 나오신다. 이 두 분은 사진이 참 잘 받아서 큰 일이다. 수정할 게 없다.
본관 2층에 체크아웃을 하면서 김ㅇㅇ 선생님과 변ㅇㅇ 선생님께 부채 선물을 드리러 갔는데
김ㅇㅇ 선생님은 주말이라 자리에 없고, 변ㅇㅇ 선생님은 르완다네 현지어수업에 대한 클레임을 듣고 있었다.
상담이 끝나고 부채를 드렸는데...역시 교육관련 일은 이런 클레임이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서울에 도착하니 3시가 조금 넘었다. 오는 동안 ㅇㅇ이한테 연락해서 홍대입구에서 보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는 그냥 바로 가서 잡기로 생각을 해두었다. 주말이지만...일단 가본다.
5군데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이리저리 방을 보다가 JJ게스트하우스 8인실 도미토리를 하나 잡았다.
2만원. 주말가격 치고는 싼 편이다.
ㅇㅇ이랑 한강공원으로 배드민턴을 치러 갔다.
40분을 걸어서 간 한강공원. 운동 코스가 된다.
몸에 땀이 촉촉하다.
배드민턴을 한 판 치고 있는데 뒤쪽에서 쾅 소리가 났다.
뇌성마비가 있는 분이 타고가던 전동휠체어가 차량진입방지봉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50대 아저씨였는데 종이장처럼 몸이 구겨져서 의자 앞쪽에 쓰러져있었다.
배드민턴을 치다말고 달려가서 일단은 그자리에서 의식이 있는지 확인했는데 다행히 의식이 조금 돌아오고 있었다. 나 말고 두 분이 더 달려오셨는데 자전거를 타던 한 분한테 한강공원 망원 2주차장 앞이니 소방서에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몸이 너무 구겨지듯 웅크려져 있어서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외상이나 내상이 있지 않을까해서 아저씨가 통증을 느끼는지 계속 확인하며 3사람이서 천천히 아저씨를 일으켜서 앉혔다.
다행스럽게도 큰 외상은 없었다. 내가 제일 가까이 붙어서 일으켰는데 술냄새가 확 느껴졌다. 한 편으로는 '아. 그렇구나. 음주운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 편으로는 '술마신 덕분에 몸이 풀려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차린 아저씨는 약간의 타박상에 부딧힌 곳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자리를 뜰려고 했다. 내가 119에 신고했으니 병원에 가서 검사라도 받아보고 가시라고 설득을 하니 하는 말이 "나는 돈이 없어. 119에 실려가면 돈 내야 돼"라고 하면서 휠체어를 움직였다. 덕분에 내 발이 바퀴에 밟혔다;;;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휠체어에서 한 발 물러났다. 자꾸 설득을 하는데도 결국 그자리를 떠나셨다.
아마 술마신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 이유일 것이다. "혹시 내상이 있을 수 있으니 계속 아프거나 하면 주위에 바로 알리고 병원에 가세요,"라고 멀어지는 전동휠체어 뒷꽁무니에 외치는 수 밖에 없었다.
ㅇㅇ이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랑 이야기하는 걸 계속 지켜보고 있었나보다.
배가 엄청 고파서 저녁으로 족발집을 찾아 들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ㅇㅇ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벌써 시간이 10시가 넘었다.
지하철까지 ㅇㅇ이를 데려다주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왔다.
방향치가 용케도 잘 찾아왔다.
방에는 웬 밝은 갈색의 머리가 긴 외국인이 1층에 떡하니 앉아있다.
방에 들어가니 "헬로우"라고 인사를 하길래 나도 "하이"라고 인사를 했다.
3초간의 침묵 뒤에 갈아입을 옷과 짐을 챙겨서 방에서 나왔다.
얼른 씻고 물을 한 잔 마시고는 밖을 잠시 서성거렸다.
11시쯤 돼서 일ㅇ이한테 연락이 왔다.
일산에서 홍대로 넘어온다는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에 침대가 남아있는지 알아보니 딱 1자리가 더 있어서 바로 예약을 해 두었다.
12시가 넘어서 근처에는 왔는데 길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위치를 물었는데 어디인지 확실하게 확인이 안된다.
GPS로 위치를 보내달라고 하고 주변에 보이는 간판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보낸 GPS를 찾아서 가보니 없다.
주변에 보이는 간판이 톡으로 왔길래 검색을 하니 내가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50m정도 떨어진 곳이다.
시계는 벌써 2시다. 얼마 안 멀다. 그 거리를 빙빙 돌았다니...
가슴 한 구석에서는 답답함이 몰려왔지만 이 늦은 시간에 나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와준 친구가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가.
답답함에 짜증을 내기보다는 별일 아닌듯이 잘 왔다고 반겨주게 된다.
편의점이 앞에 있어서 맥주를 한 캔씩 했다. 여자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시계를 보니 3시다. 슬슬~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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