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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La vida/책 Libro

[책]세계를 품은 스페인 요리의 역사 - '1장 오야 olla(솥)'요리는 스페인?

by 남쪽숲 2019.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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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는 솥이다. 깊고 큰 냄비이다. 

 

 이 책에서는 오야라는 이름의 요리가 스페인 전역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스페인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할 정도로 오야 요리는 오래되었고, 이들의 문화적 감성을 잇는 중요한 도구였다고 말한다. 거기에 유명한 요리사들이 쓴 책에 나온 오야요리의 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며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써 놓았다.

 까탈루냐 지방에서 기원한 '오야olla' 요리는 솥에 넣고 끓인 요리를 총칭했다. 이후 꼬시도cocido(끓인 것)라는 말이 나와 요리의 이름을 대체했지만 아직도 스페인어권 여러 나라들에서 오야는 요리 이름 혹은 맛있는 밥집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책의 저자인 일본사람은 마드리드풍, 까탈루냐풍, 안달루시아풍 등 여러 지역들의 오야(꼬시도)들을 정리해보고자 한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정확히 그렇게 갈라지지 않는다. 집집마다도 다르고, 가게마다도 다르다. 지역마다 많이 나고, 잡는 짐승에 따라 그 재료도 달라지고, 기후와 사람들의 습성에 따라 얼마나 푹 익히느냐도 달라진다.

책 표지. 내가 겪은 스페인 요리의 흔적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내가 접한 오야 요리는 남미 페루에서 시작한다. 처음으로 먹은 '양과 소의 내장이 들어간 매운 죽(?)요리'였다. 이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피칸떼(매운 요리)'였다. 큰 냄비에 양과 소의 내장과 고기들을 썰어 넣고 각종 채소를 넣는다. 그 중 양파와 감자는 빠지지 않고 꼭 들어간다. 호박이나 당근, 간혹 양배추를 넣는 집도 있었다. 파 같이 생긴 '포로Poro'를 썰어 넣기도 했다. 재료들이 다 들어가고, 부글부글 솥이 끓는 걸 보고 있으면 왠지 내 마음이 흐뭇해졌다.

 내가 2년간 살던 곳은 페루Peru의 남쪽 끝 따끄나Tacna이다. 그래서 이곳의 피칸떼Picante는 피칸떼 따끄네뇨(따끄나사람의 피칸떼)였다. 매운 맛은 남미 고추 아히Aji 때문이었다. 붉은 빛을 내기 위해 '아히 빵카'라는 고추 가루를 쓰고, 매운 맛을 내기 위해 '아히 아마리요' 가루를 넣었다. 앞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빛이 붉은 고추는 매운 맛이 덜하고, 노란빛을 띨수록 더 매운 것이 내가 본 남미 고추의 특징이었다. 

 이방인으로서 내가 보기에 이 동네 사람들에게 피칸떼는 좀 특별한 음식이었다. 오래 전부터 먹어온 전통 음식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결혼식, 장례식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음식이었다. 나도 지인의 가족 장례식에 참석해서 먹어본 피칸떼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평소에도 동네 한 구석에 있는 피칸떼리아에 가면 전통의 까냐술(사탕수수술이다. 아주 독하다.)이나 피스코 혹은 맥주와 함께 여러가지 피칸떼와 전통음식들을 즐길 수 있다. 

페루의 피칸떼. 따끄나에서 먹는 피칸떼 따끄네뇨이다.

 

 웬만하면 어느 나라든 깊은 솥에 재료를 썰어넣고 끓이는 음식들이 있다. 아주 간단한 방식의 요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솥에서 끓고 있는 무언가를 보면 무언가를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식사시간이 기다려지고, 솥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것이다. 

 스페인의 침략자들만 즐긴 요리가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나라에서, 누구든 먹어왔을 그 '솥에 끓인 요리'를 기억하고 싶다. 

 

로마제국에서 신대륙 발견으로, 세계사를 품은 스페인요리의 역사. 와타나베 마리 지음. 권윤경 옮김. 따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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