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에 나가면 반드시 그 나라의 과일을 한 번 이상은 사 먹는다. 과일값이 비싼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과일값이 정말 싸다. 러시아, 중국, 일본,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스페인 모두가 그랬다. 혹시 중동이나 아프리카는 가격이 비싼지 현지에 가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다들 한국보다는 싸다고 한다. 한국은 왜 이렇게 과일가격이 비쌀까? 의문이다.
스페인은 과일이 풍족하기로 유명한 동네 중 하나다. 이곳의 과일 또한 채소처럼 신대륙 발견 전과 후로 크게 나뉜다. 그래도 그 이전 그리스, 로마 시대나 이슬람을 거쳐 들어온 과일들도 많아 살펴볼 가치가 있다.
멜론, 복숭아, 레몬은 로마시대부터 재배된 과일이다. 그 중 멜론은 단일과일로는 재배면적이 가장 넓다고 하는데, 내게 남은 멜론의 기억이란 에피타이저로 먹은 '멜론 꼰 하몬melón con jamón'으로 단짠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거기다 부드러운 멜론향이 오래남아서 먹고 나서도 오래도록 그 잔향을 음미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복숭아는 먹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아. 아니다. 복숭아는 설탕에 절여져서 샐러드에 넣어서 먹거나, 뽀스뜨레로 먹는다. 케이크 위의 장식을 복숭아로 많이 했다. 레몬이나 오렌지는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것이 유명한데, 스페인 요리에서는 레몬보다 오렌지가 먼저 등장한다고 한다. 이런 감귤류(만다리나)는 요리에 향을 입히기 위해서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뽀스뜨레를 먹을 때 종종 오렌지는 없는데 오렌지 향기가 난다.
사과는 이집트를 경유해서 스페인에 전해졌고 북부의 아스뚜리아스에서 많이 재배된다. 이 사과는 내가 종종 마시는 시더(사과주)의 원료가 된다. 그 밖에 만사나 아사다manzana asada(구운사과)나 부뉴엘로스 데 만사나buñuelos de manzana(사과 튀김=작은 알처럼 만든 튀김)를 뽀스뜨레로 먹는다. 둘 다 맛이 괜찮았다. 샐러드에 넣어먹기도 하는데, 나는 샐러드에는 복숭아 절임이 더 나았던 것 같다. 뭐랄까...내가 남미에서 먹은 샐러드에 들어간 사과는 껍질이 홍옥 느낌이 나서 얇게 저민 채로 샐러드에 들어가는데, 내가 그런 느낌의 사과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디야라고 부르는 수박은 스페인에서 나지 않는건가? 나는 남미에서 수박도 자주 사먹었다. 1킬로에 300원도 하지 않았고, 길거리에서 조각으로 잘라서 봉지에 넣어 팔았기 때문에, 선인장 열매tuna와 함께 자주 사먹었다. 특히 페루의 코스타지역에서는 수분보충을 하기에 수박이나 망고, 뚜나(선인장 열매)만큼 좋은 과일은 드물었다.
배는 서양배다. 서양배를 모른다면 한 손에 잡히는 덜익은 조롱박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껍질 느낌이나 색은 배가 맞는데, 좀 많이 작다. 그래서 시럽을 만들거나 와인에 조려서 꼼뽀따compota라는 형태로 식탁에 올린다. 배 시럽은 찬물에 조금 섞어서 먹으면 배주스가 된다.(생각보다 괜찮으니 참고하시길...나는 불고기를 절이는데 절임소스 재료로 썼다.)
어느나라나 그렇겠지만 모과를 생으로 먹는 곳은...없다. 모과청을 해 먹거나, 아주 얇고 잘게 썰어서 향을 내는 재료로 쓰거나, 그것도 아니면 팩틴질을 살려서 조린 까르네 데 멤브리요carne de membrillo로 먹는다. 난 까르네 데 멤브리요가 들어간 케이크를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때는 모과향을 맡으면 멀미가 났었는데(특히 자동차 안에 모과를 넣어두면 반드시 탈이 났다.), 조린 모과는 향이 은은해서 괜찮았다.
포도는 무화과와 함께 그리스를 경유해서 들어왔는데, 보통 와인의 재료가 된다. 생으로 먹거나, 와인을 만들거나, 말려서 건포도를 만들거나 한다. 누군가는 건포도를 악마의 젖꼭지라고들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건포도를 좋아한다. 심심할 때 한 알씩 입에 넣고 침으로 녹이다가 씹으면 농축된 과당이 느껴진다. 물론 많이 먹으면 물리니까 한 번 먹을 때 그렇게 많이 먹지는 못한다.
건포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린과일을 좀 보겠다. 스페인사람들은 아몬드, 건포도, 말린 무화과, 호두, 대추야자를 모두 프루따 세까fruta seca라고 한다. 견과류도 이 안에 포함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아몬드는 스페인의 과자들을 만드는데 거의 반드시 들어간다. 뚜론, 알멘드라도, 마사판 등 대표적인 스페인 과자에는 다 아몬드가 들어있다.
생으로 먹는 과일은 원산지호칭제도 호은 지리적원산지보호 등의 지정이 되고 있다. 발렌시아의 '감귤류(오렌지 등)', 지로나와 비에르소의 '사과', 헤르떼와 알리깐테의 '체리', 까딸류냐의 비파 등이 있으니 시간이 되면 찾아보기 바란다. 이런 원산지보호제도들은 스페인이 자국의 과일자원, 수목자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도 이런 지리적원산지보호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생육지의 변화 또한 이루어지고 있어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풀이나 나무들, 그 산물들에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
[읽은 책]
로마제국에서 신대륙 발견으로, 세계사를 품은 스페인요리의 역사. 와타나베 마리 지음. 권윤경 옮김. 따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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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같네요 저도 외국 나가면 과일 가게로 달려가는데ㅎㅎ 왠지 같은 사과도 뭔가 다른 맛이 나고~ 한국에서 보기 힘든 과일이 있을때도 있고^^
답글
맞아요.
그래서 외국가면 과일가게 위치부터 찾게 됩니다.
처음 보는 과일도 맛이 어떤지 물어보고 사 먹어보게 되더라구요^^
과일 사진을 보니 해외느낌이 물씬 나네요. 유럽쪽은 과일값이 정말 저렴하더라구요.
답글
그렇죠. 왜 우리나라는 과일이 이렇게 비싼 걸까요?ㅎㅎ;
작년 스페인 빌바오 마트에서 mandarina를 사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제 마음 속 1등은 주문즉시 통으로 넣어서 갈아주는 zumo de naranja입니다ㅎㅎ
답글
만다리나는 안에 씨가 있어서...
혹시 작은 종으로 씨 없는 것 드셔보셨나요? 저는 있다고는 들었는데 못봤습니다.
제주 밀감 말고는요.ㅎㅎ;
과일의 역사를 보는 듯 합니다.
동남아 쪽만 우리보다 과일가격이 낮은줄 알았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가격이 우리보다 좋군요.
잘 보고 갑니다.
답글
네. 어느 나라를 가시든 웬만한 나라들에서는 다 과일이 쌉니다. 우리랑 식단이나 식성이 달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페인 여행할 때 친구들과 함께 먹었던 과일이 생각 나네요!! 맞아요... 우리나라는 과일이 넘나 비싸융 ㅠㅠ
답글
저는 스페인에서 먹은 블루베리(?)랑 산딸기 생각이...정말 맛있었습니다.
역시 해외 여행시에는 그나라의
과일맛을 봐야 진정한 여행의
참맛을 즐길수 있을것 같습니다.
좋은 내용 잘보고 갑니다..
답글
여행은 지금까지 내가 못해본 새로운 경험을 주니까요. 영감을 얻을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스페인가서 저 사진에있는 과일 하나씩 먹어보고싶네요ㅎㅎ
답글
남미에서 먹은 '그라나디야'는 스페인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속이 개구리 알같이 생겼는데...먹어보면 새콤달콤한...씨를 씹는 맛도 있거든요. 추천합니다!^^
맞아요. 한국은 과일이 너무 비싸요.
답글
동감합니다!^^
너무 비싸서 과일을 잘 안 먹게 되더라구요. 토마토로 과일 기분을 내고 있습니다.;;
역시 과일은 외국가서 먹어야한단말이 진짜였군요. 그나저나 스페인여행부럽습니다! 잘읽고가요 :)
답글
스페인은 저도 우연찮게 가게된 여행이지만...
정말 즐거웠습니다.^^
저도 중국갔을 때 망고 같은 과일들 많이 먹었는데, 당도가 높아서 좋더라고요~
답글
아열대, 열대과일들이 당도가 높더라구요.
망고는 먹어봤는데...망고스틴이란 과일은 아직 못 먹어봐서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스페인에서 먹은 납작복숭아가 생각나네요ㅎㅎ 기회되시면 드셔보세욧
답글
아! 납작복숭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남미에서도 먹었고, 중동 지역에서도 먹을 수 있는 모양이더라구요.
아프리카는 모르겠습니다. 북부의 모로코에서는 먹었다는데...이집트나 다른 곳은 못 물어봤네요.ㅎㅎ;;
우리나라는 과일이 비싸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과일먹으러 외국나가야할판이네요 ㅎㅎ
답글
외국 나가면 과일 찬스를 놓치지 않는 걸로!ㅎㅎ
동남아 열대과일 외에는 우리나라 제철 과일가격은 저렴하다 생각했었는데
아닌가 보네요..
답글
제철과일 가격은...외국의 일상적인 과일가격과 비슷하거나 조금 비싼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ㅎㅎ;;
한국에 비해서 과일값이 저렴한가보네요 ㅎㅎ
답글
네.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든 과일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ㅎㅎ
외국 나가면 눈여가보고 사 먹어보겠습니다.
답글
네. 처음보는 맛있는 과일들도 많으니까 꼭 드셔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