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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La vida/생각 Pensamiento

[생각] 소문과 무고. 남 이야기와 뒤집어씌우기

by 남쪽숲 2020.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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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남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더 좋아하는 것은 '자신이 질 책임이 없는 남 이야기'이다.

하지만 세상에 '자신의 책임이 없는, 자기가 낸 소문'은 없다.

누군가의 말을 전하면 결국 그것은 법으로는 죄가 되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마음에 결과의 책임을 묻게 되어있다.

그래서 어느 '깃털처럼 날아간 소문'이야기가 나와, 사람들에게 헛소문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생각하도록 한 것이다.

세계적인 팝가수 마돈나가 쓴 동화 [피바디 선생님의 사과]도 그런 이야기이다.

 

이 깃털은 어디까지 날아갈 것인가?

사진: Pixabay

어느 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부인데 어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그 남편의 사생활에 대한 소문을 퍼트렸다.

그 소문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나갔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내려앉은 소문을 주워들고 새로운 소문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실보다는 소문을 믿는다. 

소문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그것이 지나가고 날아갔는지 모른다. 

그것이 사람의 악의에 의해 이리저리 이지러지고 부풀려져서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난과 분노를 그 부부에게 쏟아내게 될는지 처음 소문을 낸 사람은 과연 알고 있었을까?

만약 그 부부에게 극단적인 사회적 문제가 생긴다면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할까?

알고 있었다면 왜 그랬으며, 스스로가 어떤 이익을 가졌는가? 그 이익은 정당한가?

 

사진: Pixabay

무고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새 돌고 있다.

어떤 이가 그런 의도를 갖고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리했다고 고발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한다. 자신은 얼마간 이익을 보겠지만 당하는 이는 인생이 망한다.

정당한 고발이 아닌, 무고가 많아지는 사회에서는 불신지수가 한없이 높아진다.

서로가 믿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무슨 의도로 그러는 것인가? 정치 때문에? 혹은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사진: Pixabay

사람들의 어두운 욕망을 자극해서, 나쁜 이야기들이 오가게하고,

그것을 빌미로 호구(?)의 돈을 얻어내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된 것은 과연 누구 탓인가? 

자신이 돋보이고 관심받기 위해 다른사람이 이룬 가정과 사생활을 파괴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과연 공익과 사익은 어디까지가 그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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