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La vida/일상 Ordinarios

[일상다반사] 표현, 얼마나 더 현명해져야 할까?

by 남쪽숲 2022. 6. 24.
반응형


유럽에 있을 때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한국사람은 키스하고 싶다. 너랑 자고 싶다 말하는 것을 금기시 여겨서 절대 서로 말로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들어보니 일부는 맞는 것도 같다.
그래서 물었다. '그러면 우리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키스하고, 섹스하는 것 같냐?'
그건 자기도 잘 모른단다.

나는 내 나름의 대략적인 답을 안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 눈에 잘 생기거나 매력을 느끼고 있는 이성에게는 성적인 표현을 어찌보면 대담하게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성에게는 그런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다.
아마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 그럴 것이다.
이 친구가 만난 한국 이성들은 이 친구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내가 겪은 이들이 그러했다.
내게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들은 내게 성적인 욕구 표현이나 감정을 말하거나 행동으로 표시내지 않았고
내게 매력을 느낀 이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담하게 표현해 왔으니까.
다만 한국에 있을 때와 외국에 나와있을 때의 차이는 조금 있었다.
외국에 나와 주변인의 눈치를 조금 덜 보게 될 때 엄청나게 적극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도 봤다.
사람은 보통, 때와 장소, 혹은 사람을 가려서 말한다. 성적인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인이라고 다른가? 아니다.
오히려 종교인들 중에 내게 그런 표현을 한 사람들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자신의 판타지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약간의 작은 축제 혹은 의식같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어서 조금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다만 그들이 어떤 '수단'으로써 자신의 성을 사용하려 할 때, 나는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끼기도 했다.



성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에 따라서 성스럽게도, 상스럽게도 변한다.
나는 성을 성스럽게 대했으면 하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서로의 관계를 인정한 후, 부담없이 성적인 의사를 잘 표현하는 관계가 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말과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양쪽의 자연스러운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다.
성생활도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성교육 교재 중에 자연스러운 합의, 동의에 대해서 잘 표현한 영상이 있다.
섹스를 같이 차를 마시는 것으로 표현한 영상이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보게 된다.

유럽 일부에서는 섹스를 위한 계약서어플까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헛웃음을 짓게 된다.
사회의 발달 사항을 볼 때 우리사회가 발달해 갈 수 있는 여러 미래 중 하나가 저런 모습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런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생존 방법의 차이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각각이 가진 가치의 차이이기도 하다.
서로 바라는 것이 다르고 사회적으로 부담을 더 가지는 쪽에서 상대를 거부하니,
사회가 이렇게라도 해서 사회를 유지시키려고 내놓는 방안들 중 하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아주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자기가 표현하지 않으면 내 앞에 있는 상대가 알아서 그걸 해달라는 건가?

그건 내가 생각하는 권리와 의무, 쾌락과 책임에 관한 것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원하는 바는 스스로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법을 알아가도록 훈련해야 한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그들이 표현하는 바를 알아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애처로운가.
결국 어느 한 쪽이 원하는 것을 손에 얻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 다른 한 쪽은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게 된다.
권리와 책임을 각각 따로 하나씩만 가져가는 것도 이상하지만
권리, 쾌락은 둘이 함께 가졌는데 책임은 일방만 지라하면 그것도 좀 이상하다고 본다.

우리는 얼마나 더 현명해져야할까?
권리와 책임의 적정선을 아는 것은 언제가 될 수 있을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