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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La vida/일상 Ordinarios

[일상다반사] 송정중학교 마지막 근무일

by 남쪽숲 2021.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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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찍 잠을 깼다.

누워서 멍하니 어둠을 마주보다가 일어나 씻었다. 학교에서 챙겨야 할 것들이 생각나서다. 

도서관에 반납할 책을 챙기고, 사물함에서 쓰지 않는 자료를 꺼내서 정리해야 한다.

지난 1년 내가 작성한 공문을 좀 정리해서 연간업무를 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6시 10분이다.

버스 시간이 좀 남아서 책장에 있는 책을 정리해서 상자에 담았다. 

이제 지리산고등학교로 갈 짐을 조금씩 정리해둬야 한다. 

얼마 안되는 짐 대부분이 책이다. 

해마다 책을 나누고, 정리해서 폐기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더 늘어가기만 한다.

지식을 갈구하는 본능의 산물이다. 남들은 이성을 이렇게 탐한다는데...난...

그래도 날 좋아한다고 온 이를 막은 적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 될 7시 15분 녹산농협정류장 58번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다.

15~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과학선생님이 마지막 당직근무를 서고 계셨다.

함께 아침을 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2학년 남학생 한 명은 잘못된 표현으로 떠나는 나를 아프게 한다.

며칠 전부터 자꾸 "선생님. 잘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등을 반복하면서 주위를 맴돈다.

이별할 때의 인사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일부러 아무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아직은 자기 감정에만 충실해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안될 것이다.

 

과학선생님이랑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8시가 넘었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자료를 정리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졸업식 시간이 됐다.

 

주차 안내를 해달라던 3학년 부장선생님의 쿨메시지에 따라서 졸업식장은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 변두리 송학정 아래에서 오는 학부모님들을 안내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학생들이 나온다.

얼른 점심을 먹고 인사를 하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마지막 통학버스 선탑이다. 학부모님들이 데려가는 학생들이 꽤 있어서 그런지

오늘 통학버스에는 평소의  7할정도만 탔다.

타기 전에 우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번에 다른학교로 가는 선생님들이 많아서 더 그럴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못보면 영영 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굉장히 섭섭해하고, 이미 결정이 난 일에 가지말라고 말을 한다.

우리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물론 여러 이유들로 인해 짧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만남이 이대로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잠깐의 헤어짐은 섭섭하지 않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날 줄 알고, 잘 헤어질 줄 안다. 사랑할 줄 알고, 미워할 줄 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체계가 잡혀 누구든 쉽게 그 뜻을 알지만 누구나 쉽게 행하지는 못한다.

 

아이들에게 지금 가장 좋은 건 가까이서 항상 마주치고 싶은 사람이겠지만....

나는 가까이서 귀한 줄 모르는 관계보다는, 멀리 있더라도 순간순간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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